수다닷컴

몇 학년인가요? - 꼬마작가 질문
3학년이요. - 고흥의 초등학생
여기 흥양읍성이 어디 있지요?
모르겠는데요.
왜 몰라요?
아직 제대로 안 살아서요. 오늘 고흥에 다시 갔다가 배꼽 잡았습니다.
어린 애가 뭔 말을 그리 잘하누?
아직 제대로 안 살아서요.

사흘 전에는 고흥 녹동항에 갔다가 오늘은 다시 고흥.
서울의 봄날처럼 완전 따뜻하니 아주 좋았던 날.
일찍 채비하고 발포에 갔으면 좋았을 걸 했던 날.
발포 가서 해수욕이나 한 판!
완전 봄날처럼 따땃한 오늘 같은 날이 겨울 해수욕에는 아주 좋지요?
하지만 고흥읍에 도착한 시간이 아리송한 때라서
군내버스 타고 유람이나 댕겼습니다.
그 사이에 잠깐 비는 시간을 틈타 고흥읍 순례.
관광 안내도를 보니 터미널에서북쪽으로 흥양읍성.
해서 여기쯤이겠다 싶은 곳에서 어린 학생들한테 물어봤더니
그 중에 한 명이 아직 제대로 안 살아서요 하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여행을 댕겨도 이런 말은 못 듣지요?
뭔가에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댕겨야 이런 대답도 듣고 하는 겁니다.
그저 남들 시키는 대로 자동차 몰고 씽씽 달려서는
사진이나 한 방 팡! 찍고 맛집으로 고고 씽!
이게 지금 한국인들의 여행 스토리.
블로그에 써 있는 걸 보면 거의 100%는 이런 스토리.

http://panzercho.egloos.com/viewer/10903962

요 사이트에 흥양읍성이 소개돼 있네요.
이런 성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찾아보고 갔을 텐데,
오늘 터미널에서 겨우 관광 안내도를 구했습니다.
그나마 거기에 그려져 있으니까 알게 된 겁니다.
이 지도 서쪽에 그려진 홍교.
이건 보면서 좀 웃었던 겁니다.
옛날 걸 복원하려면 좀 그럴 듯하게 할 것이지,
덧붙인 티가 팍팍 납니다.
하기야 <이순신 빨치산 부대>에 빛나는 보성 벌교에도 그런 다리가 있습니다.
돈이 그렇게도 아까운 것인지 뭔지.

게다가 고흥읍의 홍교는 지금 건물에 뒤덮여서 아주 초라한 자태.
고층 건물 속에 파묻힌 초가집 신세라고나 할까?
복원을 하려면 여기 건물들을 대강은 다 매입해서
전망 좋은 자리로 만들어야 하는 법이거늘,
조상의 빛나는 얼은 지금 돈에 파묻혀 숨쉬기도 어려운 판국.
그 와중에 고흥에서도 저 남쪽으로 가면
이순신이 발포에서 호령한다고 떠들고들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흥양읍성의 홍교.

이러니 어린 애들이 아직 제대로 안 살아서요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가슴이 찔리나요?
돈이라면 뭔 짓을 못할까 하는 한국인, 정말 정내미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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