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자녀와의 대화
소윤
은경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다 건널목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 안녕하세요?”셀?”
“아이고, 은경이구나, 잘 지내니?”
“네, 어디 다녀오세요?”
“응, 요 앞 시장에서 저녁 장 좀 봤단다.”
할머니가 든 장바구니가 무거워 보여서, 은경이는 할머니의 장바구니를 들었다.
“할머니, 제가 들어드릴게요. 무거우시죠?”
“아니다. 괜찮아.”
“아니에요. 어차피 같은 방향이잖아요.”
할머니는 고마워하며 은경에게 장바구니를 넘겼다.
참 착하구나. 너희 엄마는 얼마나 좋겠니? 이렇게 착한 딸이 있으니…… 아휴, 우리 손녀도 너 같아야 할 텐데.”
은경이는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파트까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장바구니를 돌려드리고 헤어진 은경이는 기분 좋게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자기 방이 뭔가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재빨리 훑어보니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이어폰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동생이 눈여겨보는 것이 거슬렸던 은경이는 바로 동생 영수의 방으로 달려갔다.
너 왜 내 방에 들어왔어!”
“뭐?”
동생은 난데없는 누나의 공격에 어리둥절했다.
“내가 너 절대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알아, 들어가라고 등 떠밀어도 안 들어가.”
“거짓말하지 마. 너 내 이어폰 가져갔지?”
“아니, 누나가 싫어하는 거 아는데 내가 왜?”
“웃기지 마. 너 내 물건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아니라니깐! 이게 미쳤나? 왜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드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돌돌 돌리자 은경이는 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때 부엌에 있던 엄마가 시끄러운 소리에 나와서 묻는다.
“너희 또 왜 그래?”
“영수가 내 이어폰 가져가놓고, 안 그랬다고 잡아떼잖아.”
“엄마, 누나가 드디어 미쳤나봐”
엄마는 사태를 파악하고, 바로 부엌으로 가더니 이어폰을 들고 왔다.
“이거 말이니? 오전에 엄마가 운동하러 가는데 이어폰이 없어서 들고 나갔었다. 자.”
“엄마!!!!!!!!”
은경은 순간 엄마를 향해 퍼붓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까지 왜 그래? 내가 내 물건 몰래 쓰는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엄마까지 날 괴롭혀야 하겠어?”
불같이 화를 내는 은경을 엄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어폰 하나 가지고 뭘 그래?”
“아니, 엄마가 지금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내 방에 들어왔잖아. 내 방에! 그리고 내 물건을 왜 마음대로 만져! 그리고 가져갔으면 가져갔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그게 그렇게 어려워?”
“얘, 가족끼리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 그럼 난 네 방 청소할 때도 너한테 허락받아야 해?”
“하여튼 싫어!”
은경은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엄마는 은경의 이런 모습이 황당하다.
학교 선생님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고, 동래 어른들도 은경이를 칭찬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씩 폭발하는 것을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다. 하루 날을 잡아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요즘 아이들하고는 일단 말싸움을 시작하면 만만치가 않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살고 있는 십대
할머니의 장바구니를 들어주는 은경이와 자기 물건에 손을 댔다고 동생과 엄마에게 함부로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은경이는 같은 사람일까? 그렇다. 같은 사람이다.
십대들의 마음속에는 두 사람이 살고 있다.
은경이의 마음속에는 성숙한 자아와 어린 자아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성숙한 자아가 작동하지만 순간순간 어린 자아가 마음을 차지하는 일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이때 발생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나이보다 성숙하고 의젓하게 행동하다가도,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다.
서너 살 시기에는 오직 어리고 미숙한 자아만 있을 뿐이다.
당장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해야만 하고, 오직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기주의 덩어리다.
이 시기에는 행동에 대한 결과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에 따라 행동하고 본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본능(id)가 주도하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서히 참는 것, 생각하는 것,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과, 그것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몸으로 익히게 된다.
당장 원하는 것을 얻기보다 오래 참고 견디면 더 큰 즐거움이 온다는 것을 배운다.
마음이 발달한다는 것은 자아가 성숙해가는 과정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쾌락원칙(pleasure principle)에서 현실원칙(reality principle)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는 것, 또 자아중심주의(ego-centricism)에서 자아탈중심주의(ego-decentricism)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른이 되면 대부분의 삶에서 현실주의적 원칙을 따른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 세상과 함께 하고, 남을 먼저 생각한다.
문제는 십대다.
두 가지가 꽤 동등하게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가지는 결코 함께 적당히 함께 표현되지 않는다.
성숙한 자아가 주도할 때에는 미숙한 자아는 보이지 않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완전히 미성숙하고 어린 자아가 전면에 나서고 성숙한 자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은경이에게 된서리를 맞은 후 황당한 기분으로 저녁 준비를 하던 엄마.
그런데 잠시 후 은경이가 부엌으로 들어와 웃으면서 묻는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잡채 냄새 나던데.”
엄마는 더욱 황당해진다.
“잡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어폰 잠깐 가져간 거 가지고 생난리를 치더니.”
“그건 그거고, 아 몰라. 나 배고프단 말이야. 엄마가 해주는 잡채는 늘 맛있어.”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조금 전만 해도 집이 무너져라 소리를 지르더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면서 엄마에게 저녁 반찬을 묻는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같은 일이 오늘날 십대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매일같이 벌어진다.
요즘 젊은이들의 말을 빌리면 ‘다중이’가 따로 없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등장하는 지킬 박사는 원래 지적이고 성숙한 사람이지만, 자기가 개발한 약을 먹고 난 다음에는 충동적이고 본능적이고 마치 야수 같은 하이드로 변한다.
십대의 마음 안에서는 어떨까?
십대들의 마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자아가 서서히 마음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아 간다.
철들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성숙한 자아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우리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놀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주변 환경에 상관없이 마구 화를 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 말은 성인이 되어도 미숙한 자아가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 큰 성인들도 불쑥 화를 내거나, 자기 이득만 챙기는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하지만 이때도 성숙한 자아는 마음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무리 어리고 미숙한 자아가 발동한다 해도 재갈을 쥔 손을 놓지는 않는다.
그래서 불같이 화를 내고 짜증이 치솟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가 가라앉고,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십대는 다르다.
한 번 미숙한 자아가 전면에 나서면 성숙한 자아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그 지배력을 상실해버린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것이다.
부모 눈에는 마치 ‘다중 인격 장애’(현재는 해리성 인격장애라 한다)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현상은 집에서 더 많이 관찰된다.
부모와 함께 집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발전과 진보는 피곤한 일이다.
어른답게, 남들에게 칭찬받는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 것은 십대 입장에서는 씩【??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는 것처럼 불편하고 피곤해지는 일이다.
그렇지만 해야 한다.
밖에서는 칭찬을 듣고, 어른이 다 됐다는 말을 들으면서 스스로 뿌듯하게 느끼지만 아이의 마음 한구석이 피곤해지는 면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끔은 갑갑한 정장을 벗어 던지고 두 다리 쭉 뻗고 마음껏 쉬고 싶은 공간을 원한다.
집에서도 학교처럼 답답한 교복에 넥타이를 꽉 조여 매고 있으면 숨이 막힐 것이다.
부모가 미워서, 문제아여서가 아니라, 이것이 정상적인 십대의 모습이다.
정상적인 십대들이 가장 안전하고 편한 공간, ‘그래도 될 만한 곳’에서 ‘아직은 아이처럼 굴고 싶어요’라고 무언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있을 때 ‘내 아이가 혹시 성격 파탄자가 아닐까’하는 걱정은 접어두자.
아직 온전히 성숙하지 못한 십대의 불완전한 자아가 온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 두 가지 자아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때로는 이쪽이, 때로는 저쪽이 전면으로 드러난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성장 과정의 하나로 이해해주는 것이 좋다. 우리 아이는 정상이다.
이럴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숙한 자아가 전면에 드러났을 때에는 맞서지 말고 무시하는 것이 최선이다.
미숙하고 어린 자아와 싸우는 것은 십대 아이와 다투는 것이 아니라 다섯 살 먹은 10년 전 아이의 마음과 싸우는 것이다. 말로는 답이 나오지 않고, 끝까지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으면서 우기고,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면서 감정적으로 대응할 뿐이다. 아무리 부모의 인내심이 강하고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어린 자아가 득세하고 있을 때에는 바람직한 해결책이나 납득할 만한 결과물을 얻기 힘들다.
그러니 어린 자아가 득세하고 있을 때에는 지금 상황에서 아이의 마음을 돌려놓거나 잘못한 행동에 대해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일단 부모로서 해야 할 일과 말을 하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좋다.
부모는 자신의 감정을 아이로부터 분리해서 그저 ‘지금 이 아이가 10년 전으로 잠시 돌아갔구나’라고 생각하자. 오래 가지 않는다.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으면 그때 대화를 시작하자.
성숙한 자아가 다시 작동하는 기미가 보이면 접근하는 것이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복기하고 어느 순간에 미숙한 자아가 전면에 나오게 되었는지 검토한다.
이때는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 아이는 조금 전에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잘 알고 있고, 상당히 난감해진 상태다.
이때 부모가 곧바로 비난을 하고 공격을 퍼부으면 성숙한 자아는 다시 뒤로 숨고, 또다시 전투 모드로 무장한 어린 자아가 나서게 된다.
부모가 적극적인 협상과 대화의 파트너로 택할 대상은 ‘건강하고 성숙한 자아’다.
이 자아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면서 어떻게 하면 미숙한 자아가 전면에 나오는 일을 줄일 수 있을지 작전을 짠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조금은 수월하고 빠르게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멀쩡하게 잘 지내던 아이가 갑자기 황당하고 공격적이고 감정적인 행동을 하고 막무가내로 나갈 때 부모는 아이가 정신질환이 생겼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
그보다 아이에게는 아직까지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하고 있으면서 앞으로 나서는 자아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는 전체적으로 보자면 건강하고 정상적이다.
그걸 모르면 자칫 부모는 아이로부터 상처를 받고, 아이와 불필요하고 답이 나오지 않는 불필요한 감정싸움에 휘말릴 수 있다.
십대 아이의 이중성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하이드가 앞에 나왔을 때에는 맞상대를 하지 않고, 대신 이 시기를 잘 극복해 앞으로 성숙한 자아를 갖춘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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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그1녀
좋은글이네요. 애 키우기 힘들겠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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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글
네~~추석 잘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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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몇년 있으면 10대가 되요 ㅎㅎ즐거운 추석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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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주세요
저도 중3 아들을 키우고 있답니다...도를 닦아도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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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다
정말 감사합니다.중1인 아들때문에 무척 고민이 많았는데 위로가 되네요.게임에 욕설에..ㅠ많은 정보 공유받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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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명절 잘보내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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