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시험문제만 잘 푸는 나라 / 신진욱
도래
대구와 경북 경산 등 곳곳에서 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불행히도 이 죽음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학교폭력, 입시부담, 성적비관 등, 죽음의 이유 역시 그러하다. 현재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은 유사한 경제수준에 있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높지도 낮지도 않다. 하지만 추세는 무척 우려스럽다.
통계청에 따르면 15~19살 청소년의 전체 사망 중에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의 13.5%에서 2009년엔 28.2%로 급증해서 사망원인 1위가 됐다. 이 추세대로 가면 한국은 현재의 노인자살률 1위에 이어, 머지않아 청소년 자살 1위 국가라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어린 죽음 앞에 잠시 애도를 표한 우리 사회는, 다시 ‘공부’ 얘기로 넘어간다.
공부 잘하는 아이만 바라는 우리 사회는 소정의 성과를 거뒀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정기적으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실시하는데, 2009년 65개국 47만명의 15살 학생들이 참여한 시험에서 한국은 참여국 중 독해 1위, 수학·과학 2위를 차지했다. 국제교육성취평가협회(IAEEA) 주최의 국제읽기능력평가(PIRLS)와 수학·과학성취도평가(TIMSS)에서도 60개국을 대상으로 한 2011년 평가에서 한국은 핀란드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런 뉴스에 뿌듯해한다면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거다. 한국에서 ‘공부’는 행복하고 유능한 성인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적 서열을 결정하기 위한 형식적 장치일 뿐이다. 학업성취도가 낮은 많은 나라들이 성인기에 이르면 매우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다. 노르웨이,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은 전통적으로 시간당 생산성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이들은 학업능력평가에서 20위권에도 못 들었다. 반면 한국의 생산성은 늘 바닥권이다.
붙잡아 놓고 시험공부만 시키는 교육방식은 비효율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2011년 통계에 따르면, 1인당 연간 2090시간을 일하는 한국은 멕시코에 이어 둘째로 오래 일하는 나라다. ‘야자’ 다음에 ‘야근’이다. 많이 일하는 것과 잘 일하는 것을 혼동하는 사고방식이 노동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반면 ‘공부 못하는’ 나라인 독일, 노르웨이, 프랑스 등은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면서 가장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은 맹목적인 훈육·경쟁·평가의 덫에 빠져 있다. 교육의 실제적 효과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맹목적이다. 그것은 단지 아이들을 문제 잘 푸는 인간으로 훈육한다. 잘 풀어야 하는 이유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고, 시험으로 한 줄에 세운 사회적 서열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보다 강하고 끈질기게 아이의 미래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 나라 교육현실을 한탄하면서도 벗어나기 힘든 이유다.
인간의 능력은 시험 잘 보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일에 대한 의지와 열정, 자신과 미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뭔가가 좋아서 몰두한 사람보다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국식 ‘몰입교육’이 오해하는 것이 그것이다. 영어의 바다, 수학의 바다, 과학의 바다에 아이가 풍덩 뛰어들어 신나게 헤엄쳐야 몰입교육이다. 아이를 풍덩 빠뜨린 뒤에 너의 미래를 위해 견디라 하는 건 익사교육이다.
아이가 즐겁게 뭔가에 몰두하면 논다고 생각하고, 아이가 지치고 힘들어하면 가슴 아파하면서도 뿌듯해하는 가학적·자학적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불행하고 무능하기까지 한 성인으로 키운다. 인간화 교육이 수월성 교육이다. 이 진실 앞에 불안해하지 않을 용기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한겨레신문 2013.3.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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