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어학 연수, 유익할까? 낭비일 뿐일까?
봄
영어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살리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선행학습’이란 정체 모를 학습 형태가 아이들 공부의 중심에 파고들어왔습니다. 나중에 배울 교과과정을 미리 공부하는 것이 이른바 ‘선행학습’인데, 이제는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서 마치 너무나 자연스러운 학습 방식인 것처럼 간주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혹자는 사교육업체, 특히 학원의 마케팅 전략이 학부모들에게 먹혀든 결과라고 합니다. 계속 변화하는 입시제도와 치열한 경쟁 때문에 불안해하는 학부모의 마음을 잘 반영해 만든 것이 바로 ‘선행학습 상품’(사교육업체 최고의 ‘히트작’)이라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앞서기를 바라는 학부모의 욕구를 잘 충족시켜주고 있으며, 학원 입장에서도 수업 커리큘럼을 짜기 쉽고 장기간 이어갈 수 있으며, 또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덕에 사교육업체가 빨리 성장하게 되었고, 이제는 ‘선행학습 시장’이 거대해져 마치 선행학습이 아주 오래전부터 당연히 있어왔던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있어야 하는 것처럼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미리 선행학습을 해두면 학교에서 다시 진도를 나가니까 결과적으로 두 번 배우는 복습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한 오해입니다.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아이들은 자신이 이미 배웠다고 생각한 부분을 마치 처음 배우는 것처럼 다시 집중해서 공부하지 않습니다. 즉, 이미 배웠다는 ‘자만심’이 생겨 학교 수업 때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처음 선행학습할 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배우기 때문에 공부의 완성도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 학교 수업을 통해 처음 배울 때보다 훨씬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공부량이 적은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선행한 시간만큼 고스란히 공부량이 늘어나므로 과도한 ‘공부 노동’에 시달리게 됩니다. 요컨대,선행학습을 할수록 공부량은 늘어나는데 반해 학습(기억) 효과는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선행학습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과목, 필요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하면 일정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학업 성취력이 좋아 진도로 배우는 교육과정을 빨리 마스터한, 이른바 상위권 아이들은 오히려 ‘적절한’ 선행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더 많은 지적 자극을 받기 때문에 두뇌가 더 빨리 발달하게 됩니다. 천재나 영재급으로 판명된 아이라면 상당한 수준의 선행학습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소수에 속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선행학습을 해도 좋은 아이들은 학업 성취력이 우수한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자존심’ 때문에 선행학습을 합니다. 혹자는 아직 아이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존심’이 아니라는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만, 아이가 객관적으로 상위권이나 영재로 판명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아이’로 봐야 할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가 진도로 배운 내용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성적도 만족스럽게 나온다면 선행학습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할 자격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선행이 아니라 당장 ‘진도’에서 배운 내용을 충실하게 익히는데 집중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자녀지도법이자 학습법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지금 배우는 교과과정에 대한 이해도 낮아 부실한데, 여기에 추가로 미래의 교과과정을 배우게 하는 것은 아이의 공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진정한 자존심은 주변의 잘못된 학습 형태를 그대로 모방하고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맞는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잠재력이 빨리 피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조기영어 열풍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영어가 언어라는 점을 고려해 하루라도 빨리 영어를 공부해야 그만큼 미래의 영어 성적 경쟁에서 유리하게 작용해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 이론’에서 말하는 언어란 모국어(한글)이지 외국어인 영어가 아닙니다. 따라서 진정한 영어 실력은 모국어인 국어 실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지 외국어로서 얼마나 빨리 영어를 공부하느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 학부모들 중에서 상당수가 영어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해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영어권 국가에 어학 연수를 보내는 것을 마치 필수인 것처럼 여깁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비록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는 대부분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영어 어학 연수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 특히 아이의 자율적 동의를 구하지 않은 연수에 대한 신뢰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아예 해외에서 유학을 할 것이 아니라면 연수를 지나치게 장기간(2년 이상) 다녀오는 것도 국내의 학교생활에 다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주므로 피해야 합니다. 반대로 방학을 이용해서 잠깐 한두 달 ‘영어 캠프’ 형식으로 연수를 가는 경우도 있는데, 어학 연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아 자칫 ‘영어 관광’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어학 연수를 간다고 해서 물론 부작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적 습득 능력이 좋은 초등학생 때 연수를 가면 그 나이 또래 수준이기는 하지만 회화력(말하기와 듣기 능력)이 일정 부분 좋아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연수를 계획할 때는 무엇보다 영어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어떻게 해서 최대한으로 높일 것인지를 신경 써야 합니다. 연수의 장점은 살아 있는 영어권 문화를 직접, 또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이 과정을 통해 영어의 매력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한층 더 커지게 할 수 있습니다. 꼭 연수를 가지 않더라도 영어를 잘하려면 영어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키우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핵심 사항입니다.
혹 학부모들 중에서는 어학 연수의 목적을 단지 중․고교 진학 후 학교 영어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것에만 둔다면 다시 생각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 두 일은 전혀 성질이 다른 것으로 이 목적으로만 연수를 보내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행위입니다. 영어 공부 의욕까지 꺾는 아주 안 좋은 목적입니다. 간접적인 영향으로 말하기, 듣기, 쓰기 능력이 좋아질 수는 있지만 그 정도는 국내에서 공부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학교 영어시험 향상을 위한 공부는 연수와는 별개로 따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momntalk.com/knowledge/webtoon/moment/view.m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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